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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료봉사’라는 말은 그저 내게 먼 이야기 일거라 생각했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편입을 하여 간호학과의 배워야할 과목과 실습 그리고 여태까지와는 다른 또 다른 집단생활까지 3학기를 치르고 나니 내 자신이 지쳐가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해외의료봉사 신청공고를 보고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막연한 생각으로 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였다. 많은 학생들이 신청하였다는 말을 접한 후 떨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합격 문자를 보고 너무 놀라 소리쳤다. 떨어진 학생들에게 미안한 감도 들기 시작했지만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되고, 필요한 사람이 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과 응원해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캄보디아의 해외의료봉사를 가기 전 긴장과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드디어 2016년 1월 9일 우리는 캄보디아로 떠나게 출발하였다. 내가 속했던 중앙공급실은 돈보스코 학교에서 외과와 같은 방을 썼다. 중앙공급실 담당하셨던 세실리아 수녀님께서 수술실 간호사셨기에 외과 수술 때 빛을 발하셨다. 중앙공급실 다른 파트에 비해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일반검진부에서 각 과로 환자를 분류하면 환자들을 내과, 외과, 소아과 등으로 안내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인사 외에 자주 썼던 말로는 ‘저를 따라 오세요.(먹 땀 끄념)’, ‘앉으세요.(언 끄이 짜)’,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쏨 짬-띠니)’ 등을 많이 했었다. 처음에 캄보디아어를 썼을 때는 우물쭈물하고 입에서만 맴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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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에서는 수술이 몇 차례 있었다. 장시간이 걸리는 큰 수술은 이곳에서 하기에는 수술도구의 부족과 무균적이지 못해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수술환경에 적합하도록 세팅하는데 주력을 다하였다. 박성환 교수님께서 수술하시고 의대 본과 3학년 이유진, 오욱현 학생이 어시스트 및 랜턴을 교대로 들고 있었다. 소독간호사는 수녀님이 맡아서 하셨고, 나와 수경이는 순환간호사 및 주변 환경 정리를 하였다. 첫날에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환자가 많지 않았지만 이틀째부터 조금씩 입소문이 났었는지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와계셨고, 점차 돈보스코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외과는 오전, 오후로 수술이 진행되었고 전날 수술 받았던 환자의 드레싱을 하셨고, 공급실이 바쁘지 않을 때는 약제부와 일반검진부 그리고 돋보기를 나눠드리는 일을 도왔다.
돈보스코에서 마지막 날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다음날 교구청으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오후 3시까지 진료를 보았다. 그래서 멀리서 오셨던 분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셔야 했었던 것이 가장 아쉽고 죄송스러웠다.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어서인지 돈보스코 학교가 얼마나 매력적인 학교인지 구석구석 둘러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만 하였다. 우리를 도와줬던 현지 봉자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에 사진이라도 한 장 더 남기려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현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내 자신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내가 그들에게 주고자 했던 마음은 전달이 되도록 했었던가 하는 부분들이 오랫동안 후회로 남을 것 같다.
7박8일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캄보디아로 가기 전 많은 걱정들이 앞섰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셨다. 우리 봉사단원들도 각자가 다른 다짐을 하였겠지만 하나의 목표로 달려왔기 때문에 이만큼의 성과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가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 했었고, 조금의 후회가 남더라도 더 단단해지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에 주어진 좋은 기회를 잡지 않았었다면 후회만 남았었을 것입니다. 평생에 다시없을 기회를 주시고 좋은 경험하게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캄보디아 해외의료봉사를 통해 앞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쏨 아오이 미은 쏘커피업 러어!(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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