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의료봉사
14학번 임서희
쯤닙 쑤어.
입학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이태석 신부님이나 마더 데레사처럼 해외에서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는 해외 의료봉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마침 휴학을 한 학년이 의료봉사를 가게 되었고, 기적처럼 기회가 닿아 캄보디아로 출발하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 예방접종부터 해야 할 일들이 쏟아졌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집행부가 아니라서 그럴 수 있다) 현지에서의 봉사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하였다. 드디어 출정미사를 시작으로 6박 7일 간의 캄보디아 바탐방에서의 현지 봉사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어마어마하게 길고 지루했던 만 하루의 이동시간을 거쳐, 첫 날 숙소에 도착하였고 설렘을 채 느끼기도 전에 다음 날 일정을 위해 빠르게 숙면에 빠졌다. 첫 째날, 둘 째날은 중앙공급실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첫 째날은 외과와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어 현지인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질병의 환자들이 간이 진료실로 사용되는 유치원 밖에 길게 줄을 하여 앉아있었고, 학생의사들은 환자들을 직접 문진하고, 통역하시는 분들과 바쁘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귀퉁이에서 나는 교수님들께서 수술하실 때 사용하신 기구들을 열심히 소독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상황은 더 최악이었다. 멸균이 된 물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떠다니지 않는 물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집행부였던 조규희 선배님과 이재석 선생님께서 화장실의 물(지하수를 받아 물 내리는 데 쓰려고 옆쪽에 받아둔 물)도 받아와 보고, 지하수를 직접 펌프로 퍼 올려 보았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결국 냄비와 버너를 빌려, 그나마 깨끗했던 화장실 물을 퍼서 팔팔 끓이고, 소독 솜으로 닦고, burn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비싼 약물을 들고 가기는 했으나, 거기서 건져 물품을 닦을 깨끗한 물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끓인 물과 소독 솜, 그리고 알코올에 불을 붙여서 하는 소독을 계속 반복해서 시행했다. 한국에 깨끗한 의료 환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 곳 환경에서 모두가 나름의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였다. 물론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 오는 것은 있었지만, 중앙 공급실에서의 봉사는 무척 보람 있었다. 모든 진료의 시작과 끝을 내가 소독한 기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비록 현지인들은 보지 못했지만, 현지인들의 체취가 묻어 있는 기구들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다. 뭔가 더 할 일이 없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에 준비해 간 기구들을 모두 꺼내어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셋 째날, 넷 째날의 봉사는 일반검진실에서 보내게 되었다. 임상실습을 할 때처럼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을 재는 것은 똑같았지만, 달랐다면 그들은 현지인이고 마치 응급실의 트리아제와 같은 일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현지인들과 짧은 언어로 대화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몸짓 눈짓으로 많이 대화를 나눴는데, 그들의 감사함이 그 속에서도 충분히 느껴져서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캄보디아 봉사 내내 호텔에서 만났던 분들, 그리고 앙코르왓에서 관광을 했을 때의 가이드분들도 참 감사하고 대단한 일을 하시고 계신다고 하셔서, 나는 과연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학생 간호사들이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 곳에 계시는 교수님들을 도와드리는 역할 만을 할 뿐인데 너무 융숭한 대접을 받고 오진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출발 전 우리가 오히려 성장할 기회가 된다고 하셨던 말씀처럼, 간호사가 돼서는 이 때의 경험들이 많이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 봉사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이걸 계기로 나중에 간호사가 되어서 다시 한 번 찾게 된다면 그 때는 조금 더 큰 도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발자취를 좇아 오는 후배들과 다른 봉사단들이 왔을 때는 더 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기회를 주신 의료원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께 다시 한 번 깊게 감사를 하게 된다. 감사합니다 :) 쭘닙 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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