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해외의료봉사 체험기
21학번 이연우
‘필리핀’과 ‘의료봉사’ 모두 제가 처음 접해보는 단어였습니다. 시작하기 전 오티와 봉사 일정을 들을 때 까지만 해도 막연하고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던 봉사활동은, 지프니를 타며 매연을 가득 마시는 순간 실감되기 시작했습니다. 의료봉사의 시작인 첫날은 아침에 일정이 조금 밀려 봉사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병원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너무 놀라기도 하고 겁도 났습니다. 현지의 통역 선생님들과 간단한 인사와 환영 목걸이를 받음과 동시에 예진부 자리를 세팅하고 예진을 시작했습니다. 성인 예진을 맡았던 저는 대상자의 ID 카드를 보고 이름과 성별, 나이를 적고 몸무게와 알러지 여부, 과거력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후 바이탈을 측정하여 기입하고, 대상자의 증상을 조사하고 요약하여 적은 후 가야하는 진료과를 분류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증상을 들어도 어느 과를 보내야하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대상자의 이름도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지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소통이었습니다. 간단한 영어를 사용할 수 있으신 분도 계셨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시고 따갈로그어로만 대화하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증상과 같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현지 통역사 선생님께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셔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역사분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한번에 두 대상자분의 통역을 도와주시는 등 환자도 많고 통역사분도 바쁘셔서 이 또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환자분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많은 것을 물어봐야하는 상황이 생겼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통역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손짓과 몸짓을 섞어가며 증상을 확인하고, 제가 직접 눈으로 통증 및 염증 부위를 관찰하면서 오히려 증상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증상의 환자를 만나며 점점 감이 잡혔고, 현지 선생님들과도 손발이 척척 맞기 시작하며 둘째날부터는 빠르고 정확하게 환자 분류를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나이대의 환자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잠깐이지만 그들의 환경과 상황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두증, 뇌성마비 아기를 안고 걱정하는 표정을 하는 사람들. 치과 기구 부족으로 어머니와 아이 중 한 명만 이빨을 뽑을 수 있다고 하자 망설임 없이 아이를 선택하시는 어머니. 통증의 시작일이 언제였냐고 묻자 10년, 20년 전이라고 대답하시는 많은 환자분들. 일차가 거듭될수록 더 힘들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예진내용을 더 채우고 도움이 되고싶다는 생각이 컸고 더 필요한 것이 없나 먼저 찾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영어를 모르는 환자분들이 오시면 대기하시는 환자분이 와서 통역을 해주기도 하시는 등 제가 오히려 도움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예진이 끝나고 감사하다고 말하시는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첫날 예진내용을 작성하며, 이 내용으로 진료가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올려보낸 환자분들이 모두 진료를 보신건가? 하며 걱정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둘째, 셋째날 진료과와 다른 부서를 가보니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며 각자 자리의 일을 너무나 열심히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한 부서, 한 부서 모두 고생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많은 환자분들이 진료를 보고 기분 좋게 떠날 수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시고 진행 모두 책임져주신 신부님, 부족한 예진 내용을 보고 많은 환자분들 모두 진료 봐주신 의사 선생님과 교수님들, 더운 날 불 앞에서 너무 고생한 CSR 팀, 항상 바쁘게 약물 조제해준 약제부, 웃으며 통역 도움주신 현지 선생님들, 부서별로 돌아가며 수고해주신 의대 학생분들, 항상 옆에서 자리 지키며 힘 보태주신 간호대 교수님들 모두 너무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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